뉴욕 블룸버그 같은…‘주류 서울시장’은 왜 찾아보기 어렵나
뉴욕 주민으로 살다보니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 시장(73·2002년 1월1일~2013년 12월31일 재임)이 대단한 시장이었음을 체감한다. “그가 영원히 시장이길 바랐다”고 말하는 뉴요커를 여럿 봤다. 40년 간 시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퇴직한 한 인사는 “블룸버그는 좌(Left)도 우(Right)도 아닌, 주류(Main Stream)였다”고 말했다. 진보-보수 정치색 없이 뉴욕과 뉴욕시민만 생각했다는 찬사였다. 처음엔 ‘구관(舊官)은 명관(明官)’ 효과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뉴욕을 취재할수록 이 ‘블룸버그 현상’이 이해됐다.
지난해 뉴욕 관광객은 사상 최고인 5640만 명. 2010년 이래 5년째 기록 행진이다. 그 동력을 탐구하다보니 그 끝에 블룸버그가 있었다. 그가 시장에 취임한 2002년 1월의 뉴욕은 ‘9·11테러(2001년) 충격과 추가 테러 공포로 뒤덮인 도시’였다. 2000년 3620만 명이던 관광객이 2001년(3520만 명) 100만 명이나 줄었다. 그는 ‘관광객 5000만 시대 개막’이란 비전을 제시하고 매진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관광객 감소가 예상되자 2009년 1월 최초의 글로벌 멀티미디어 홍보 캠페인 ‘여기는 뉴욕입니다’를 전개했다. 그가 세계를 향해 외쳤다.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여행 안 가시고 ‘스테이-케이션’(stay-cation·머물다(stay)+휴가(vacation)의 합성어) 하시죠. 뉴욕의 에너지는 세계 최고입니다. 뭘 망설이세요. ‘당신의 도시’ 뉴욕으로 오세요.” 캠페인 첫 해만 3000만 달러(약 339억 원)를 쏟아 부었다. 다음해(2010년)엔 온라인 원-스톱 관광서비스 시스템인 ‘nycgo.com’를 개설했다. 관광객 숫자가 2010년 4880만 명으로 예전 증가세를 회복하더니 2011년 마침내 5000만 명을 돌파(5090만 명)했다.
맨해튼 ‘실리콘 앨리(Alley·골목길)’는 서부 실리콘밸리에 도전하는 정보기술(IT)과 창업의 요람으로 성장했다. 그 뒤에도 블룸버그가 있었다. 그는 “월가(금융업) 중심 뉴욕을 ‘디지털 시티’로 탈바꿈시키겠다”고 공언했다. 코넬대 공대 캠퍼스의 루즈벨트 아일랜드(맨해튼과 퀸즈 사이 섬) 이전 프로젝트가 압권이었다. 미 창업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스탠포드대가 없다면 실리콘밸리도 없다. 맨해튼 실리콘앨리가 살려면 인근에 우수인력을 공급해줄 명문 공대가 있어야 한다. 블룸버그는 그 핵심을 꿰뚫었다”고 말했다.
블룸버그 전 시장이 무결점 정치인은 결코 아니다. 당적을 민주당→공화당→무소속으로 옮겼으니 한국으로 치면 ‘철새 정치인’이다. 3번 치른 시장 선거에 뿌린 돈만 2억5000만 달러(약 2825억 원)가 넘으니 ‘돈 정치’를 일삼았다. 여동생과 딸을 시 공무원으로 채용했으니 ‘직권 남용 정실 인사’까지 했다(이들에게도 자신처럼 연봉 1달러만 지급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그는 뉴욕을 수단이나 발판으로 이용하지 않았다. 뉴욕에 헌신했다. “뉴욕시장이 내 처음이자 마지막 공직”이라던 자기약속을 묵묵히 지켰다.
‘대한민국의 시장’ 서울시장은 어떤가. 시장 출신 대통령이 탄생한 이후 서울시장이 ‘대통령으로 가는 중요한 발판’처럼 여겨지는 것 아닐까.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직을 거는 승부수를 왜 던져야 했을까. 서울시장 후보 자리를 양보하고, 양보받는 정치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좌도 우도, 위(대통령직)도 보지 않고 ‘시장이 마지막 공직’이라고 다짐하며 헌신하는, 블룸버그 같은 ‘메인스트림 서울시장’은 왜 이토록 찾아보기 어려운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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