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넘은 美日 新밀월과 韓國외교의 참담한 실패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다음 달 하순 미국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 하는 방안이 확정됐다고 한다. 상·하원 합동연설은 미국이 제공하는 최고의 예우인데, 여러 차례 합동연설을 한 한국과 달리 일본은 그런 기회를 갖지 못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패전국이란 원죄 때문이다. 이런 역사성은 역설적으로 이번 연설의 의미가 각별함을 말해준다. 미·일(美日) 밀월을 구가하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시절이던 2006년 이뤄질 뻔 했으나 미국 참전용사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그런 만큼 종전 70년에 성사된 이번 연설은 그런 시대의 종언(終焉)이라는 상징성을 갖는다.
미·일 관계는 실제로도 그렇게 움직이고 있다. 일본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여,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반대, 미·일 방위협력지침 재개정 등 친미노선이 더욱 선명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기체계의 공동 개발·운용을 넘어 공동 작전지휘까지 거론되고 있다. 신(新)밀월을 넘어 유착이라 할 만하다. “과거의 적을 비난해 값싼 박수를 받는 정치”라는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차관의 발언은 실언(失言)이 아니었다. 중국의 부상에 따른 견제 필요성을 중시한 미국 주류의 현실주의 노선이 과거사를 넘어 일본과의 협력을 공고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한국 외교는 이런 중대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아베 총리 연설은 참담한 실패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미국 정부 아닌 의회 차원에서 결정된 연설”식의 변명은 아직 그 의미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위안부 관련 여론과 이벤트에 매달리고 있을 때 일본은 치밀하게 미국 의회와 행정부를 움직였다. 위안부 문제 진전 없인 한·일 정상회담도 무의미하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원칙에는 찬반이 있을 수 있다. 어느 쪽이든 방향을 설정했으면 성과를 내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 결정적 일격을 당한 것이다.
미·일 관계의 이런 변화는 한국 외교에 심각한 도전이다. 박정부는 이제부터라도 대일(對日) 외교 전략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고, 중대한 전환기에 접어든 동아시아 역학구도 재편에 제대로 대응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과정을 볼 때 ‘윤병세 외교팀’이 이를 감당할 역량이 있는지 회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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