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그 자리에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평화로운 시위대에 최루탄을 쏜 지난 1일 백악관 앞 라파예트광장에 있었다. 경찰 가혹 행위로 흑인이 숨진 데 항의하는 시위가 격해지자 수도 워싱턴은 오후 11시이던 야간 통행금지를 이날부터 오후 7시로 당겼다. 대낮같이 환한데 격앙된 시위대가 순순히 귀가할까. 경찰은 어떻게 나올까. 통금은 난생 처음이라는 30대 병원 레지던트와 잡담하며 7시를 기다리고 있는데, 경찰이 난데없이 최루탄을 쏘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무자비했다. 방패로 찍고 내리치고 밀쳤다(아래 사진). 머리 위로 날아오는 온갖 발사체들이 떨어져 터질 때마다 가스와 연기, 폭발음을 만들어냈다. 처음 보는 ‘무기’들은 얼마나 위험한지 가늠할 수 없어 더 무서웠다. 다른 도시에서는 고무탄을 맞고 실명한 기자도 있었다. 바로 앞에서 한 남자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부여잡고 쓰러졌다. 그를 일으켜 부축해 뛰는 모습은 영락없는 1970~80년대 한국 대학가 풍경이었다.
백악관은 시위대가 폭력적으로 변해 강제 해산에 나섰다고 해명했지만, 동의할 수 없다. 구호는 맹렬했지만 행동은 절제돼 있었다. 경찰이 이동하라고 경고했다지만, 몇㎞에 걸친 군중이 들을 수 없는 소리였다. 시위대를 밀어내고 길이 트이자 트럼프 대통령이 한 일은 건너편 교회 앞에 가서 성경책 들고 사진찍기였다(아래). 상황을 통제했다는 메시지를 주기 위한 10여분짜리 촬영 이벤트였다. 주지사들에게 주문했듯이 “거리를 장악”한 것이다.
이러고도 미국이 자유 진영 리더를 자처할 수 있나. 중국·홍콩에 민주주의와 인권을 말할 수 있을까. 회의가 들 무렵 반전이 일어났다. 폭동 진압을 위해 연방군 투입도 불사하겠다고 한 대통령을 향해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이 “지지하지 않는다”며 반기를 들었다. 트럼프가 시위를 “전쟁”, 주 방위군을 “점령군”이라고 표현할 때 “전투공간”이라고 맞장구친 데 대해서도 유감을 표했다.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장관은 트럼프를 향해 “성숙하지 못한 리더십”이라고 비판했다.
다음날 시위에는 중장년층 참여가 확 늘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걸릴까 두려워 집에서 TV로만 보다가 정신이 번쩍 들어 나왔다고 했다. 일부 공화당 의원도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여론이 나빠지자 트럼프는 군이 꼭 필요할 것 같지 않다며 꼬리를 내렸다. 연방군과 주 방위군 해산도 시작했다. 강경 진압을 부추기거나 시위를 폭동이라 부르는 트윗도 멈췄다. 정부에 빌미를 주지 않으려는 듯 약탈과 방화도 수그러졌다. 미국을 이끄는 원동력, 균형 상태로 원상 복구하려는 힘이 작용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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