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ace with Trump, War with Bi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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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유산에서 가장 논쟁할 만한 것이 전쟁을 추가로 벌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도 19일 고별연설에서 “나는 새로운 전쟁을 시작하지 않은 수십년 만의 첫 대통령이 된 것에 특별히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우리는 조국을 평화롭게 지켰다. 결코 전쟁을 하지 않았다. 폭탄 한방 터뜨리지 않았다. 총 한방 쏘지 않았다”(2011년 9월11일 <가디언> 회견)는 지미 카터 전 대통령 이후, 전쟁을 벌이지 않은 첫 미국 대통령이기는 하다. 트럼프가 전쟁을 벌이지 않았다는 것이 진보 진영이 비판하는 미국의 패권주의적 간섭을 포기하는 차원에서 이뤄진 것은 아니다.

트럼프는 미국의 동맹들에 방위비 분담 등을 몇배로 강요했다. 미국이 설계하거나 주도한 파리기후협정과 이란 국제 핵협정 등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했다. 의무는 저버리면서 권리만 향유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면서 그 비용은 부담하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이를 두고 ‘비자유주의적 패권’이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미국이 자신의 가치와 체제를 확산하려는 ‘자유주의 국제질서’에서의 패권과 대비되는 말이다. 1990년대 초반 사회주의권 해체 이후 미국은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전파하고 지킨다는 명목으로 과도한 개입, 더 나아가 무력분쟁을 마다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지나친 개입에 따라 미국은 국력을 전세계로 과잉 전개해, 미국의 패권 유지에 사활적인 중국 견제를 소홀히 했다는 비판을 들었다.

자유주의 국제질서 패권에 대한 비판은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 및 스티븐 월트 하버드대 교수 등 현실주의자들의 단골 메뉴였다. 이들은 워싱턴의 외교안보 엘리트들이 초당적으로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옹호하며, 미국을 분쟁의 수렁에 빠뜨렸다고 비판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국가안보 부보좌관을 지낸 벤 로즈는 이런 기존의 외교안보 엘리트들을 덩어리라는 뜻의 ‘블로브’(Blob)라고 지칭했는데, ‘적폐세력’ 정도의 의미가 되겠다. 어쨌든 트럼프가 새로운 전쟁을 하지 않았다고 자랑하고, 중동에서 미군 철수를 밀어붙인 것은 절반의 진실을 말한다. 미국이 밖으로 나가서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전파하고 지키는 것이 미국 대중들의 이익에 보탬이 되는 것이냐는 트럼프 지지층의 불만을 반영한 것이다.

전형적인 자유주의 국제질서주의자들인 조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안보팀도 이런 비판을 의식하는 모양이다.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은 자신들의 집권을 예상했는지, 지난해 초 <포린 어페어스>에 미어샤이머와 월트의 자유주의 국제질서 비판을 반박하는 장문의 기고를 했다. 그의 요지는 미어샤이머 등의 비판이 현실을 무시하고 있고, 정책 입안자인 자신들은 국가 이익을 추구하는 데 현실적인 제약이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미어샤이머 등이 책상물림 선비일 뿐이라고 완곡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설리번도 “워싱턴 대외정책 합의의 중심축에서 최근 변화”를 지적하며, “대외정책 분야의 대부분 인사들은 중동에서 또 다른 분쟁 선택을 반대하고… 직접적인 군사력에 덜 의존하는 효과적인 대테러 전략을 추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좌파와 중도의 수렴 쪽으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며 “국제경제 정책에서 분배 효과에 대해 높아진 관심, 부패·신파시즘과의 싸움에 대한 집중, 군사력 사용보다는 외교에 대한 강조, 민주주의적 동맹에 대한 지속적인 개입 등에 공통의 우선순위가 주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설리번의 이런 말은 분명 바이든 행정부가 무력 개입을 극도로 거리면서, 기존의 오지랖 넓은 자유주의 국제질서 틀에서 개입도 자제할 것임을 시사한다. 트럼프가 국내에 벌여놓은 난제들 때문이라도 밖으로 나가서 무력을 사용하는 개입을 선택하기가 힘들 것이다. 하지만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외정책이라는 이라크 전쟁의 후폭풍에 힘입어 집권한 버락 오바마 행정부도 리비아 내전에 개입해, 리비아 주민에게는 지금까지 고통과 참극이 이어지고 있다.

바이든도 임기 안에 새로운 전쟁을 벌이지 않은 또 다른 대통령이 될 수 있을지 지켜보자. 트럼프처럼 단순히 자신의 지지층의 불만을 달래는 절반의 진실을 실현하는 차원이 아니라, 또 오바마 행정부 때처럼 북한에 대한 ‘전략적 인내’라는 무대책 차원에서 벗어나, 적극적이고 건설적인 개입을 할 수 있을지를 지켜보자는 것이다. 이것은 미국이 아직 신봉하는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보수할 수 있을지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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